장류장수의 고장 순창 가을 나들이
한숨 나는 세상살이, 은근하고 후끈한 장맛으로 “으라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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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햇빛 가리는 발 마냥 메주가 걸렸다. 대롱대롱 가을이 걸렸다. | |
낙엽조차 물들 시기를 잊은 듯, 온데 간데 없이 가을이 사라졌다.
하지만 순창의 가을은 낙엽색이 아니라 냄새로 찾아온다. 바로 장 익는 냄새다.
라벤더 향처럼 세련되진 않아도, 은근하기로는 비길 데 없는 된장냄새, 머스크향처럼 매력적이진 않아도, 화끈하기로는 비할 데 없는 고추장냄새. 은근하고 화끈한 장맛은 우리 스스로 ‘칭찬과 비난’을 오가는 우리 국민성을 닮았다. 매일같이 먹는 된장, 고추장 아니던가.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성격이 되었으리란 궤변도 영 틀린 말은 아닐 성 싶다. 가을 순창에서 장류의 힘을 맛보자. 강천산도 맨발로 거닐어 보고, 세월에 익은 장구목의 진기함도 구경하자. 순창의 가을, 날 것보다 익은 것이 좋다. 자연도 장도 세월에 익어가는 순창으로 떠나보자.
“장하다! 순창”
"장하다! 순창"은 순창군의 상징적인 문안이다. 보는 이들마다 '기가막히다'며 탄복한다. 실과 바늘처럼 장과 순창이 호응하는 단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순창의 장은 유명하다. 그럼에도 정작 전라도 어디쯤 순창이 있는지 퍼뜩 떠오르지 않다. 순창은 남원과 담양, 임실등과 접해 있는 전라북도 내륙 한 가운데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논산, 천안간 고속국도, 호남고속국도, 태인 IC에서 30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탈 때는 고창, 담양간고속도로를 지나 88고속도로, 순창 IC를 통과한다.
순창에서 ‘장류’의 힘을 맛보기 위해선 우선 ‘순창 전통고추장마을’에 가야 한다.
고추장마을은 광주에서 순창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순창읍내로 들어가기 직전에 있다. 마을입구는 흡사 규모가 큰 국립공원의 주차장 같은 분위기지만, 조금만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조금 과장해 북촌 한옥마을에 들어선 듯 하다. 줄지은 한옥. 그리고 집집마다 한가득한 장독과 대롱대롱 매달린 메주가 전통고추장마을 고유의 정체성(?)을 한껏 드러낸다. 대개 가로수나 가로화분이 있을 자리에 고추가 자라는 것도 이곳만의 풍경. 장독대 곁으로 자라는 빨간 고추하며, 그 주위를 맴도는 잠자리는 얼핏 상투적인 가을 풍경 같지만, 가장 가을다운 풍경임을 실감케 한다.
그 뿐이 아니다. 고추장마을을 설명하는데는 냄새도 빠지지 않는다. 냄새의 진원지가 어딘지, 꼬리가 어딘지 모를 온갖 장의 냄새가 마을에 풍긴다. 고추장 냄새고, 된장냄새다. 메주 냄새고 간장 냄새다. 그리고 향긋한 과일로 담그는 장아찌 냄새다. 마음 푸근해 지고 군침마저 도는 것이 이쯤 되면 냄새보단 향기(꽃, 향, 향수 따위에선 나는 좋은 냄새)라고 해두자.
집집마다 줄맞춰 늘어선 장독대엔 장이 가득. 마을내 체험관에서는 장류만들기 체험과 숙박이 가능하다. |
전통고추장마을이라고 해서 마을 가구 전부 ‘장을 담글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기자. 웬걸. 답은 그랬다. 보이는 집 대부분이 고추장을 비롯한, 된장, 장아찌류를 직접 만들어 팔고 있었다. 또 문패와 간판마다 ‘제조기능인’이라는 표시를 발견할 수 있다. 제조기능인이란 ‘우리 전통식품의 계승발전과 가공기능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순창군에서 만든 제도다. 기능인 칭호를 얻기 위해선 해당 전통식품이 조리와 가공업에 20년 이상 종사해야 한다. 한마디로 장류의 ‘장인’인 셈. 마을에서 만드는 장류가 믿음직스러운 이유다. 요컨대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은 장류의 장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약 46가구에 149명이 거주하고 있다.
기웃기웃하는 본새가 손님 같아보였던지 들어와 구경하라는 아줌마들의 손짓이 이어졌다.
“아! 사라고 안할텡게 와서 식혜 한 그릇 먹고 가” 못이기는 척 가게에 들어서자 고추장, 된장은 물론, 고차장 깻잎 장아찌, 된장 깻잎 장아찌, 울외 장아찌, 참외장아찌, 더덕장아찌, 굴비장아찌, 감장아찌, 오이장아찌, 무장아찌까지 별의별 장류가 다 있다. 마을을 오가다 만난 감 썰던 아주머니, 참외 속을 파던 아주머니 모두 장아찌를 만들던 중이었다. 후에 들은 얘기로 식혜는 고추장을 만들때 들어가는 재료 중 하나라고. 필수재료는 아니지만, 식혜를 넣으면 맛도 빛깔도 좋아 많이들 이용한단다.
단장이 한창인 순창군 장류체험관도 마을에서 기대되는 곳 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고추장, 장류만들기 체험은 물론 숙박도 가능하다. 마을 내 유일한 식당인 해오름 식당도 있다. 메뉴는 단 두가지. 된장찌개와 고추장 비빔밥이다. 맛깔스러운 장아찌류와 정갈한 나물반찬과 함께 나온다. 다른 양념 없이도 ‘장’맛으로 충분히 맛있을 수 있음을 단 두개의 음식만으로도 증명해 보인다.
장아찌를 만들기 위해 감(↑)과 참외를 다듬는 아주머니(↗). 특별한 양념없이도 감칠맛 나는 된장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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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진화 '장류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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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의 위대한 발명품 고추장
전통고추장마을에서 눈으로 입으로 코로 장맛을 봤다면, 보다 과학적인 ‘장류’를 알기 위해 마을 건너편 ‘장류박물관’으로 향해 보자. 순창장류박물관은 박물관의 진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이곳은 박물관의 사전적 정의에 체험관이란 뜻이 더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감을 이용해 장류를 설명한다. 우선 고추의 유입경로, 발효식품의 효능, 메주와 발효조건 오감체험, 고추 속 탐험 등 글자로 설명했다면 퍽이나 지루하고 식상했을 내용들을 체험과 함께 이해토록 만들어 놓았다.
특히 순창이 고추장으로 유명해진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순창 고추를 가져다 고추장을 만들어도 맛이 다른 이유”는 순창이 겨울철 따뜻한 분지 형태의 온난 지역에 위치해 고추장의 품질을 좌우하는 효모균의 번식에 최적의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독특한 전통식품임을 아로새길 수 있는 장소다. 관람료는 무료다. | |
순창에서 ‘장류’외에 무엇이 여행자들을 즐겁게 할까.
가장 대표적인 곳은 강천산군립공원이다. 강천산은 1981년 전국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높이 120m의 구장군 폭포와 40의 병풍폭포는 강천산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황토마사토길을 맨발체험을 할 수 있는 구간으로 병풍폭포와 구장군 폭포사이 5km의 길에 조성돼 있다. 지압효과와 함께 피로회복,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신발과 양말을 망설임 없이 벗는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황토마사토길이 끝나고 나타나는 메타세쿼이아길도 여행자들의 마음을 빼앗는다. 긴 구간은 아니지만, 큰 키와 잎사귀로 햇살을 아롱지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메타세쿼이아 길은 신기함을 너머 마음의 위안까지 준다. 고추장마을에서 강천산 으로 향하는 길가에도 길진 않지만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다.
강천산의 이름은 ‘강천사’라는 절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때인 887년, 풍수지리로 이름을 떨친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현재는 한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사찰이지만 예전에는 불전이 3개, 승방이 12개, 암자가 12개나 있었던 대규모 사찰이라 한다. 강천산군립공원 입구에서 1.8km 지점에 있다.
강천산과 회문산의 선물
순창에는 강천산 외에도 회문산이라는 걸출한 여행지가 있다. 민족의 영산인 회문산은 요즘 자연휴양림으로 찾는 이가 많다. 회문산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데다, 80년대 남부군이라는 소설,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남북간 이념대립의 현장으로 깊게 각인돼 있다. 그렇다보니 상대적으로 고추장 전설의 유래지,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진원지라는 의미가 다소 퇴색된 게 사실.
▷강천사(작은 사진 위)의 가을 ▷강천산 황토마사토길과 메타세쿼이어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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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산에서 부침많았던 우리 역사를 떠올리는 동시네 ‘고추장의 전설’까지 담아보는 상행을 삼자. 휴양림 입구를 지나 30m의 구름다리를 지나면 육각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장관이다. 그리고 회분봉(837m) 정상에 서면 멀리 지리산과 내장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세월과 섬진강이 익힌 맛, 장구목의 기묘함
산길을 올랐으니, 이젠 물길을 따라가 보자. 순창지역을 지나는 섬진강 물길 얘기다.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희한한 곳이 있다. 순창군 동계면 내룡마을, 여기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희한한 곳 장구목(혹은 장군목)’에 도착한다. 네비게이션으로 딱히 검색할 지번이 없어 주변 건물인 ‘산수가든’으로 검색해 들어가야 한다. 장구목은 섬진강 물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장구목(혹은 장군목)이라 불리는 이곳은 감탄사 외엔 마땅히 설명할 말을 잊게 한다. 맞다. 감탄사가 만들어진 이유는 감탄하라는 것이지 설명에 있진 않을 터.
서북쪽으로 용골산을 두고 남쪽에 무량산을 둔 이곳 얼핏 보면 산 좋고 물 좋은 시골마을이다.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고, 물이 차가워지면 낚시를 하는 여느 유원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바위를 유심히 보면 앞서 말한 ‘감탄사’가 섬진강 물살처럼 쏟아진다. 물결치는 바위 때문이다. 광물인 바위가 움직일 리 없건만, 이곳에서만큼은 물결친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수백 년일지, 수천 년일지, 수만 년일지 모를 시간동안 물과 바람과 햇살이 물결치는 바위를 만들었다. 강물의 굽이침을 순간포착하면 이런 모양이지 않을까. 기기묘묘한 바위들은 약 3km가량 이어진다.
이 바위들 중에는 사연 있는 바위가 있다. 요강바위다. 3km나 이어진 바윗길에서 바위 하나를 찾을 수 있을까 싶지만,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요강처럼 생긴 바위’를 찾으면 된다. 물론 ‘요강’크기는 몇 십 곱절에 이른다. 성인 한명이 거뜬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다. 높이 2m, 폭이 3m에 이르는 바위다. 이 바위가 고가의 가치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90년대 도석꾼에게 도난을 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후에 마을 주민들이 되찾아 본래 있던 위치에 두었다고. 자연이 만드는 기적 중에 놀랍지 않은 게 있겠냐만 순창의 장군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신비로움이다. 고추와 콩이 자연에 발효되어 고추장과 된장이 되듯, 거대한 암석이 자연에 다듬어져 장구목을 만든 게 아닐까.
도난당하기도 했던 요강바위↑ 순창군 동계면 내룡마을은 섬진강 물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
대한민국 입맛을 다스리는 여기는 순창!
이 대목에서 질문 하나 던져본다. “오늘 점심 뭐 드셨어요?” 된장찌개? 혹은 고추장 비빔밥? 삼겹살에도 된장찌개를 먹고,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한국인의 입맛은 ‘장류’에 좌지우지 된다. 그 장류로 이름난 순창이니 이만하면 한국음식의 성지라 할만하다. 장류축제가 열리는 순창에서 깊어가는 장맛과 깊어가는 가을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여행정보>
▷자가운전
서울출발-경부고속도로(천안분기점)-천안,논산간고속도로(논산분기점)-호남고속도로 27번,30번국도(4시간)
부산출발-남해고속도로(순천분기점)-호남고속도로(옥과IC)-27번국도이용(3시간 소요)
▷대중교통
고속버스: 서울↔순창(09:30, 10:30, 13:30, 14:25, 16:10-3시간 30분)
직행버스: 광주-순창(20분 간격), 남원-순창(25분 간격)
▷묵을 곳
순창고추장전통마을 내에 있는 ‘순창장류체험관’에서 체험과 숙박이 가능하다.
오는 10월 17일부터 199일까지 3일간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에서 순창장류축제가 열린다. 전통고추장, 메주, 두부 만들기 체험은 물론, 콩비즈공예체험, 젓가락으로 콩 옮기기 등 콩과 장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행사들이 마련돼 있다. 순창장류들은 농특산물 전시관에서 구입할 수 있다.
▷문의
순창군청 063-653-2101~4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063-650-1667
강천산 관리사무소063-650-1533
회문산 자연휴양림 063-653-4779
글/ 사진 한국관광공사 국내온라인마케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