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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과 사람 사이…울릉도 별미가 있어 축복받은 여행

울릉도 비경에 섣부른 설명을 두는 것은 실례다. 무서울 만큼 원시적이고, 숨겨두고 싶을만큼 아름답다.
울릉도 비경에 섣부른 설명을 두는 것은 실례다. 무서울 만큼 원시적이고, 숨겨두고 싶을만큼 아름답다.

여행과 음식은 따로 있지 않다.

그래서 어렵사리 도착한 울릉도에서 굳이 먹는 얘길 좀 하려 한다. 몸이 고단한 여행일수록 '별미'에 대한 욕구도 비례해 커지는 법. 울릉도의 숱한 비경을 제쳐 두고 먹는 얘기를 가운데 토막에 두는 이유다. 울릉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음식은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비경이 있기에 더욱 감칠맛이 난다.
도동항에 내려서는 관광객. 원시자연과 별미여행이 시작되는 순간.
"꺼억 꺼억"
묵호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한 울릉도행 한겨레호. 누군가 솟아오르는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게워내는 소리에 잠이 깬다. 모르긴 해도 '멀미 같은 건 내 사전에 해 본적이 없다"며 멀미약을 거부했을 게다.
배 좌석 앞주머니에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사용하여 주십시오"라고 적힌 비닐봉투가 하나씩 있다. 처음 이 봉투를 발견했을 땐 심히 정중한 문구에 웃음이 피식 났더랬다. 하지만 두 시간 넘는 항해에서 '기분 좋지 않음(멀미)'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길동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녀석이다.

도동항에 내려서는 관광객. 원시자연과 별미여행이 시작되는 순간.

때문에 '뱅드롱'이라는 멀미약과 정체모를 흰 알약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울릉도에서 맛보는 첫 번째 음식(?)은 멀미약 차지다. 이쯤 되면 멀미약조차 울릉도 특산물이지 않겠나 싶다.
울릉도 도동항에 내려서는 여행자들의 표정이 오묘하다. 선착장과 바투 보이는 화산섬이 신기해서다. 눈앞에 서 있는 난생 처음 보는 시커먼 바윗덩이가 생경해서다. 구멍 숭숭한 화산암 바위에 어찌들 뿌리를 내렸는지 작은 키를 붙들어 맨 식물들이 애처롭다. 짐짓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멀리서 보면 흡사 바위 틈 사이에 이끼기 낀 듯도 보인다.
여행자들은 길고 고단했을 여정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도동항 전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머리 속에 먹음직스러운 말풍선이 하나씩 달린다.
"홍합밥이 맛있었다"는 울릉도여행 경험자의 말과 "울릉도는 두말할 것 없이 오징어에 쐬주 각일병"이라는 아저씨와 "소고기 정국엔 약소불고기 한번 먹어 봐야한다"는 아줌마까지.

"오징어 한번 잡좌보세요" 피데기에 오징어 회, 오징어 내장탕은 덤
물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많았다는 오징어, 요리 종류도 다양


"오징어 한번 잡솨보세요, 오징어~ 오징어!"
도동항에 도착하자 밀려드는 짭쪼름한 공기는 퍼뜩 오징어 향 같다. 아니나 다를까 예서제서 피데기(반건조 오징어의 경상도 방언)를 팔고 있다. 호객하는 아줌마 인심이 어찌나 좋던지 노릿하고 말랑하게 구워진 오징어를 찢어 죄다 나눠주고 다닌다. 파는 것보다 주는 게 더 많지 않을까 의문스러울 정도다.
도동항에 내려서자 피데기 파는 아줌마가 먼저 반긴다. 맛배기 인심도 좋다
도동항에 내려서자 피데기 파는 아줌마가 먼저 반긴다. 맛배기 인심도 좋다.

"자자~ 배 탈 때 먹고, 술 안주로 먹고, 심심할 때 먹고…". 용도 많은 오징어는 그만큼 파는 곳도 많다. 울릉군에 따르면 해방전후에는 '물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오징어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도심에서 맥반석구이로 많이 알려진 피데기는 말캉말캉한 질감이 좋아 치아가 안 좋은 어른들도 곧잘 한축씩 사곤 했다. 한축에 10,000원에서 13,000원 가량 한다.
건조오징어와 함께 살아있는 오징어를 파는 곳 역시 울릉도 전역에 많다.
도동항에서 싱싱한 횟감을 두고 벌이는 흥정도 볼거리다.
격자무늬 칼집마다 양념이 배인 울릉도 별미 오징어불고기
↑ 격자무늬 칼집마다 양념이 배인 울릉도 별미 오징어불고기

←도동항에서 싱싱한 횟감을 두고 벌이는 흥정도 볼거리다.

도동항 한켠. 주황색 천막 아래, 빠알간 대야에는 갓 잡은 오징어와 문어, 각종 횟감이 담겼다. 손님과 주인아줌마가 가격흥정을 하고 있을 때, 오징어 한 마리가 대야 탈출을 감행했다. "찍" 물을 쏘며 위로 돌진! 조금만 더 가면 바다인 것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에 철퍼덕 떨어지고 만다. 천막주인 아지매는 "야야, 야가 와이라노~"라며 문제의 오징어를 덥석 집어 빨간 대야에 넣는다. 힘 좋았던 그 녀석은 탈출시도를 한 덕에 흥정하던 손님의 횟감이 되고 말았다. 오징어 회는 한 접시에 만 원가량 한다.

오징어 얘기를 시작한 김에 오징어 불고기까지 이어가자.

오징어불고기는 오징어에 체크무늬로 칼집을 내고 다리는 먹기 좋게 썰어 고추장과 야채 양념을 해 철판에 구운 요리다. 식당에서는 '오삼불고기'라 해서 삼겹살을 같이 넣어 구운 것도 팔고 있었다. 칼집 낸 자리마다 윤기 나는 다홍색 양념이 배어 식욕을 돋운다. 자칫 강아지처럼 침이 주룩 흐를 것만 같다. 오징어는 익으면 질겨지므로 살짝 익었을 때 매운 김에, 뜨거운 김에, 허기진 김에 먹어야 맛있다. 1인분에 만원이며 도동항 근처의 쌍둥이식당(054-791-2737)을 주민에게 추천받았다.


"멩이짱아찌 맛있지요?! 쫌 사갈랍니까?"

오징어불고기 상차림에 등장한 명이 인기가 좋다. 이후로 밥상마다 오른 명이는 함께 한 길동무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다. 울릉도 주민들이 '멩이짱아찌'라고도 하는 이 나물은 '명이'가 제 본명이다. '산마늘'이라고도 하는데 이름대로 산에서 나는 마늘이라 생각하면 된다. 2월 눈 덮인 산에서 채취하는 명이는 깨끗이 씻어 끓인 간장을 부어 담근다. 도동 '쌍둥이집' 아주머니는 "한 3, 4월 되면 집집마다 명이를 담가요. 설탕하고 식초 쫌(좀) 넣는 거 말고는 다른 거 넣는 거 없어요"라며 명이가 본래 마늘향이 난다고 강조했다. 겨울철 먹을 게 귀했던 시절 눈 속에서 자라는 이 나물을 먹으며 목숨을 이어 갔다 해서 '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명이는 울릉도 거의 모든 음식에 곁들여진다.
명이는 울릉도 거의 모든 음식에 곁들여진다.

대개 1kg씩 포장해 팔고 있으며 건어물상이나 특산물 판매점 뿐 아니라 식당에서도 판다. 가격은 10,000원. 명이를 파는 곳에선 어김없이 "명이는 색이랑 맛을 봐야 안다"며 맛배기를 준다. 종합해보면 "너무 크지도 않고, 뻣뻣해서도 안 되며, 오래된 건 색이 누렇다"는 게 요지. 외지인이 보기엔 그 명이가 그 명이거늘 집집마다 '멩이짱아찌'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울릉도 더덕 먹으면 새벽까지 잠 못자~"

 울릉도에서 오징어만큼 자주 볼 수 있는 더덕

해안일주도로를 달리다 통구미 몽돌해변가를 지나 거북바위 앞에 멈춰 섰다. 바다를 마주하고 더덕판매소가 보인다. 주인아저씨는 "구경 좀 해도 되냐"는 말에 "울릉도에선 오징어보다 유명한 게 더덕"이란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울릉도 더덕은 심이 없어서 최상품이야. 이게 다 수출하는 거 아니요." 아저씨가 가리키는 손 끝에는 어른 손가락 세 개를 더한 만큼 큰 더덕들이 푸대에 그득그득 담겨있었다.
"요거는 5년산, 요거는 12년산" 애지중지 키웠을 더덕을 한 뿌리 잡더니 '댕강' 잘라 한점 건넨다. "남편들한테 이거 먹이면 새벽까지 못자. 껄껄껄" 질펀한 농을 건네면서도 표정은 천진하기만 하다. 한 편에선 보는데서 바로 갈아 주는 즉석더덕차가 한잔에 1,000원씩 팔리고 있었다.


육지에서 온 소는 '약소' 취급 안 해

울릉도에서 독도를 향하는 삼봉호에서 만난 이명숙씨(57․ 경기도 일산)씨는 울릉도 별미로 '약소 불고기'를 꼽았다. "좀 비싼 감이 있지만, 믿음직스러워서 좋았어요. 소고기 때문에 원채 시끄러우니까 울릉도 약소가 고맙게 느껴지더라고요. 다른 곳은 어떤가 몰라도 내가 먹은 식당에서는 자라는 소를 송아지 때부터 텔레비전으로 보여 주데요. 그러니까 믿음이 가고…."
울릉도에서 오징어만큼 자주 볼 수 있는 더덕
울릉도여행은 해안일주도로 여행의 다름 아니다.
울릉도여행은 해안일주도로 여행의 다름 아니다.
실제 울릉도에서는 약소의 맛과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울릉약소 전문 판매점을 지정운영하고 있다. 주민 말에 따르면 "뭍에서 들여온 소는 약소불고기 지정업소에서는 팔 수 없고, 송아지로 들여온 경우에도 3년 이상 울릉도에 자라야만 약소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울릉도 사동에 있는 울릉가든에서 약소불고기를 맛봤다.
육회를 즐기지 못하는 기자 일행의 촌스러운 입맛에도 불구하고 생고기가 먹음직스러워 보인 건 힘든 뱃멀미에 시달린 탓일까. 달궈진 불판에 도톰한 고기가 오르자 "치르르르~" 익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한다. "오래 구우면 맛이 없으니까 조금씩 구워서 얼른 얼른 드셔야 해요". 음식을 내 주시던 아주머니가 불판 가득한 고기를 보고 한마디 훈수를 두신다.

울릉도에서 나는 다양한 나물을 먹고 자란 '약소' 육지 소와 달리 육즙이 많지 않고 향이 나는게 특징
울릉도에서 나는 다양한 나물을 먹고 자란 '약소'
육지 소와 달리 육즙이 많지 않고 향이 나는게 특징

약소불고기는 약초 먹고 자란 소냐고 묻자, 약초를 따로 먹이는 건 아니란다. 이게 웬 반전?! 설명은 이랬다. "울릉도에서는 고비나 전호, 부지갱이 같은 게 많이 나는데, 나물들을 베고 나면 길게 자란 대를 소에게 먹인다. 약소라고 해서 한약에 들어가는 그런 약을 먹는 게 아니라, 청정자연에서 자라는 나물을 먹고 자란 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울릉약소는 육지의 그것과 달리 육즙이 많지 않은 편. 양념을 따로 찍어 먹지 않아도 고기 자체에서 독특한 맛이 우러나온다. 특히 명이와 쌈을 싸먹는 맛은 '환상의 짝꿍'이다. 본래 하나의 음식이 둘로 나뉘었다 할 만큼 잘 어우러지는 맛이다.
'소고기마니아'라면 울릉군홈페이지나 울릉도 유선방송을 통해 '소 잡는 날'을 확인하고 가도 좋겠다. 홈페이지와 유선방송에 "오늘은 홍길동씨네 소 잡는 날"과 같이 공지를 띄운다. 약소불고기는 일인분에 15,000원. 울릉가든(054-791-0990)과 암소한마리식당(054-791-4440), 한우식육식당(054-791-4869)가 유명하다.


팔도강산 다 있는 산채비빔밥이건만,

"울릉도에서 산채비빔밥 안먹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홍합밥과 산채비빔밥도 울릉도 특산물로 꼽힌다. 홍합밥은 홍합에 야채를 섞어 밥을 쪄서 만든다. 간장이나 고추장에 비벼 먹기도 하지만, 홍합에 염분이 많아 양념을 따로 하지 않고도 맛이 괜찮다. 울릉도에서는 전복죽과 더불어 영양식으로 즐겨먹던 음식이다.
오색찬란한 나물의 향연 대신 엇비슷한 색깔의 나물로 채워진 산채비빔밥도 울릉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음식이다. 전국 팔도 산이며 강이며 어딜 가든 맛볼 수 있는 게 산채비빔밥이지만, 울릉도의 그것은 다르다.
울릉미역취와 섬부지갱이, 삼나물, 고비 땅두릅 등을 넣어 눈으로 볼 수 없는 나물맛의 고소함과 깊이를 준다. 홍합밥은 10,000원, 산채비빔밥은 8,000원 선이다. 홍합밥은 도동1리에 보배식당(054-791-2683) 산채비빔밥은 추산일가식당(054-791-7788)이 알려져 있다.

비경과 사람 사이 별미가 있어
울릉도의 영양밥인 홍합밥. 홍합과 야채로 밥을 짓는다.
울릉도의 영양밥인 홍합밥. 홍합과 야채로 밥을 짓는다.
화려한 꾸밈 없이 울릉도 나물들로 맛을 내는 산채비빔밥
화려한 꾸밈 없이 울릉도 나물들로 맛을 내는 산채비빔밥
검푸른 바다빛과 삼선암을 비롯한 공감, 관음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울릉도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검푸른 바다빛과 삼선암을 비롯한 공감, 관음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울릉도를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울릉도는 어디를 가도
비경(祕境)이다. 사람들은 비경을 즐기려 행남등대 해안산책로를 걷고, 성인봉을 오르고, 일주도로를 달린다. 그리고 표현하기도 힘든 비경 사이엔 언제나 음식이 있다. 비오는 날 울릉도 트레킹에 나선 중년 아저씨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홍합밥이 있고, 제 얼굴만큼 커다란 이어폰을 끼고 지도를 살피던 20대 여대생의 주머니에는 혼자 걷는 길을 위로해줄 달달한 울릉도 호박엿이 있다.
동창들과 함께 여행 온 수원댁은 간만에 느끼는 자유에 약소불고기가 있어 두 배로 행복해 지고, 독도 가는 길에 만난 안동아저씨는 주민에게 배운 낚시비법으로 잡은 횟감 생각에 행복하다. 그렇게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은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운 비경과 사람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여행정보>

울릉도 여객선
운항로
선명
육지출항
울릉출항
소요시간
요금
포항↔울릉
썬플라워호
10:00
16:00
3시간
49,000원
후포↔울릉
씨플라워호
부정기운행
부정기운행
3시간
42,500원
묵호↔울릉
씨플라워호
부정기운행
부정기운행
3시건
42,500원
한겨레호
10:00
15:00
2시간 20분
42,500원
울릉도 호박엿 뱃길따라
"울릉도 호박엿 뱃길따라~"

※포항여객선터미널을 이용할 경우 요금에 여객선터미널 이용료(1,500원) 전산매표수수료(600원)이 추가된다.
여객선 운행은 성수기와 동절기에 변동사항이 있으므로 반드시 문의하고 예약하는 게 좋다. 포항과 묵호여객선터미널의 주차장은 유료이며, 썬플라워호는 차량적재가 가능하다. 또 울릉도에는 LPG 충전소가 없으므로 LPG 차량은 가져가면 안된다.

대아고속해운 http://www.daea.com
포항여객선터미널 054)242-5111~2 1600-1877 ☆포항여객선터미널 자세히 보기
묵호여객선터미널 033-533-8676

묵을 곳

사동리의 울릉리조트 대아호텔(054-791-8800), 울릉마리나관광호텔(054-731-0020)이 규모가 크고 깨끗해 유명하다. 추산일가펜션(054-791-7788)은 송곳산을 마주보는 해안 절벽에 지어져 있어 풍광이 좋다. 도동항 근처에 모텔과 여관이 많다. 독도행 여객선(오전 7:00 출발)을 탈 계획이라면 도동항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울릉도 관광지 및 교통편 자세히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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